아이의 감정 폭발 앞에서 저는 자주 흔들렸습니다. 울고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혼을 내야 할까, 안아줘야 할까. 매번 다른 반응을 하며 마음속에는 후회가 남았고, 어느 순간 아이의 감정을 멈추게 하려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엉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혼내는 대신, 이해해 보자. 감정을 억누르지 않도록, 옆에서 흘려보낼 수 있게 도와주자. 그렇게 아이를 바라보니, 이전엔 보이지 않던 마음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을 통제하기에는 아직 어린아이
어른도 감정이 격해질 때 말이나 행동을 조절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하물며 감정 조절 기능이 아직 발달 중인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말아라', '그만 울어라'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요구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즐겁게 놀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면 울고 뒹구는 아이를 보며 "왜 이렇게 조절을 못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유독 크게 울거나 화를 내면 저도 당황해서 "그만해!"하고 다그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한참 울다 말없이 저를 쳐다보는 눈빛을 마주했을 때, 문득 '지금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다루는 방법도, 그 이유도 잘 모릅니다. 그저 무언가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이 안에서 넘치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른인 저조차도 감정이 복잡할 때는 말 대신 침묵하거나 퉁명스러워지는데, 아이는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자라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선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감정을 막기보다 함께 건너는 법을, 저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쌓일수록, 아이도 조금씩 스스로를 믿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감정에는 이름이 필요해요
아이의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저는 자주 말문이 막혔습니다. "왜 화났는지 말해줘"라고 물으면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고, 저는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장난감을 바닥에 던지고 울던 순간, 제가 무심코 "속상했구나"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큰 배움이었습니다. 아이는 아직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게 화인지, 서운함인지, 실망인지 구분이 되지 않으니 결국 몸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울음을 멈추게 하기보다, 아이의 감정을 먼저 짚어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거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화났지?" "기다리는 게 지겨웠구나"같은 말들을 건네면, 아이는 눈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졌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아이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작은 질서를 찾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네 마음 알아"라고 먼저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말로 표현하는 힘은 시간이 흐르며 익히게 되겠지만, 먼저 감정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을 어릴수록 더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아이가 감정 표현을 할 때마다 엄마나 아빠가 화로 반응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이기에 품어줄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아이가 먼저 "나 속상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작지만 놀라운 변화라 생각합니다.
혼내기보다 도와주는 태도
감정이 폭발한 아이를 마주하면, 제 마음도 덩달아 거칠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피곤한 날, 아이가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울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습니다. "또 시작이야?", "이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너만 손해야."와 같은 말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아이가 제 옆에서 조용히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기다려줄 걸' 하고 말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울며 짜증을 부리던 순간에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더니, 의외로 금방 울음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격한 반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힘들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을 바랐던 것입니다. 감정이 가라앉은 후,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라고 물어보면 아이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감정을 바로잡으려 하기보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이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혼내는 것은 쉽지만, 기다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그 안에서 감정을 천천히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도 저도, 더 단단한 부모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매일이 쉽진 않지만, 아이와 나 사이의 연결은 더 깊어지는 걸 느낍니다.
이전엔 아이의 울음이나 짜증을 멈추게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감정은 더 거칠게 나왔고, 저도 지쳐만 갔습니다. 이제는 혼내기보다 기다리는 쪽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고,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갑니다. 물론 저도 여전히 서툴지만, 함께 감정을 배워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됩니다. 느려도 괜찮다는 말, 그건 아이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습니다.